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또 다른 명작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다운로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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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인터스텔라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영화의 깊은 인상이 가시기 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말을 성간이동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별속으로..즉 우주속으로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이 영화의 취지에 더 잘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슬픈 일이며, 지구에 닥쳐온 위기로 인하여 예정된 시간에 그 순간을 온 가족이 같이 해야한다면 더욱 슬픈 일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들이 스스로 초래한 환경파괴 등으로 종말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떠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나고 또 그 해결책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우주탐험영화이다.

시나리오를 쓴 크리스토퍼놀란 감독의 동생인 조나단 논란은 이 영화를 위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4년 동안 상대성이론을 배웠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우주이론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어려운 이론들을 일반인들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성이론이니 5차원의 세계니 무한중력의 블랙홀이니 우주공간의 순간이동을 가능케하는 웜홀이니 하는 것들은 이영화를 더욱 신비롭고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았다.


영화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해답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 답을 제시하는 미지의 존재들이 결국은 미래의 인간들임을 암시하며 인간의 모든 문제는 결국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해결 할 수 밖에는 없으며 또 해결하게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있다.


대부분의 우주영화가 그러하듯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내용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영화적인 요소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하는 결정적인 해결책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에 있다는 원론적인 설정이 일견 통속적이긴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인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기도 하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하여"란 영화의 대사는 어떠한 상황에 처했어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담고서 오늘 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 살아가야한다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해도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이다 .


2시간 49분의 긴 런닝타임에도 비교적 지리한 감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간 놀란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1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가야만 했고 갈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 다음 사람들은 그 후의 시대의 모습이 어떤지 묻곤 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우선 물어야 할 것은 옛 시대가 지난 후의 새로운 시대의 모습이 아닌, 과연 그러한 시대가 정말로 존재했었는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2

놀란 감독의 탁월함은 인터, 즉 무엇과 무엇 사이의 경계를 교묘한 줄타기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는 선과 악, 이성과 감성, 과학과 철학, 믿음과 지식, 확신과 진리 등등 우리가 자칫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무엇과 무엇 사이(인터)의 경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우리에게 매번 묻곤 한다. 예를 들어 “나”, “너”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있는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빛의 경계선에 서있는가? 등등. 다시 한 번 놀란 감독의 탁월함은 이러한 주제를 너무나 쉽게 대중적인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놀란 감독은 우리의 평범한 생활 속에 내재하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들을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천재가 맞다.


#3

“인터스텔라”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행성들 사이(인터)는 과학적 계산으로 지구의 시간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적어도 광년이 빛의 속도(아무튼 졸라 빠른 속도)로 달릴 때의 1년 단위 개념인 것도 감이 잘 안 오는데, 더군다나 이 속도로 달리면 지구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시간도 느려진다니 과연 그럴까하는 강한 의심과 함께 왠지 광활한 우주 앞에서 우리의 삶이 무척이나 허망해지는 느낌이다. 상대성이론이 과학분야에서 얼마만큼 사실로 인정받고 지지받는지는 전공자가 아니라 잘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시간과 공간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그럴싸해 보인다. 우리는 이미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이행했던 과학의 역사를 봤기 때문에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상대성이론의 이행이 더더욱 그럴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고의 객관적 영역인 과학의 영역마저도 어쩌면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최고로 객관적인 과학의 영역을 객관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아니 이 질문에 앞서 우리와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가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4

인간은 참으로 복잡한 동물이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점은 그 누구나 동의하지만, 복잡한 이라는 형용사에 부여하는 의미는 제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성선설 대 성악설 등등.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각 좀 하고 글 좀 쓴다는 모든 사람들이 제 마다 각각 이 복잡한 이라는 형용사에 의미 부여를 해왔다. 그래서 실제로 인간이 더 복잡한 동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라는 점과 복잡할수록 인간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감성, 믿음, 확신 등등의 주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여러 특수한 상황들에서 해답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매번 그랬듯이, 이 번에도 우리는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어제 갔던 식당에 사람이 한가했다면, 그 식당은 한가한 식당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제의 앎이다. 그러나 만약 오늘 간 식당에 사람이 붐볐다면, 어제의 앎은 단지 나의 확신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앎을 확장해 나간다. 과학은 철학과 별개의 학문이 결코 아니며, 감성은 지성에 비해 단지 주관적이지만 않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인 믿음을 객관적 지식으로 인정받게 만들 수 있으며, 우리의 확신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이분법적 사유는 이 가치들이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만들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제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노약자를 위해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우리의 모습이다.

#5. 이제 영화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분명 이 영화에 숨겨진 몇 가지 설정들이 눈에 띈다. 아직 극장에 상영 중인 영화라 자세한 분석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세 지점들을 지적하고 싶다. 첫 번째로 여자 브랜든이 자기 때문서 중력이 무지 센 행성에서 시간과 연료를 날려먹고 만 박사와 사랑한 사람 사이에 행선지를 결정할 때 말하는 대사들이다. “이번에는 내 가슴이 시키는 데로 하고 싶다.” 하지만 일행들은 그녀의 판단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이 먼 판단이라고 생각해서 쌩까버리고 맷 데이먼에게로 가고 만다. 두 번째로 결국 만 박사가 있는 행성으로 가지만, 거기서 보이는 만 박사의 모습이다. 그는 인류를 구하고자 한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뭐시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한 행성이 인류가 살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구라를 시전 한다. 한 편으로는 외로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확신을 관철시키려는 사명감에 구라를 시전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구라는 플랜B로서의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단지 딸딸이에 불과할 뿐이다. 즉 선의의 거짓말이라 믿는 철저한 자기기만. 왜냐하면 선의의 거짓말은 거짓말의 이유가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타인들의 승인을 받아야 성립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는 구라를 시전해서 구인선을 불렀을 것 같은데... 아마 내가 그에게 죽빵을 날리고 싶었던 이유와 그가 위험한 인물로 비춰진 이유가 히틀러도 진심으로 조국을 위한 결단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듯 싶다. 세 번째로 이 영화의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반전의 지점이다. 사실 이 반전의 장면에서 사실 “살인의 추억”에서 발차기로 흥한자 발이 잘리고, 육감으로 흥한자 육감을 버리고, 분석으로 흥한자 분석을 버린 장면이 겹쳐진다. 결국 과학과 객관적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나가리 되고, 유령을 봤다고 말한 꼬맹이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선택한 한 여인의 선택이 결국 옳았다. 유령과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말했던 자들의 옳음... 그리고 다시 알 수 없는 자들의 도움... 이것이 놀란 감독이 우리에게 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싶다. 이 알 수 없는 것들에 내용을 채워주고 이름을 불러주어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지닌 최고의 힘이 아니겠는가? 소중한 우리의 것으로, 그래서 외면하지 않는 것. 너무 나갔나.....


#6

언제 다시 한 번 극장에 가서 보든가, DVD로 나오면 다시 한 번쯤은 볼 만한 영화는 분명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무엇과 무엇 사이(인터)에 정확한 경계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너무나 복잡한 동물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때론 사랑으로 너와 나를 잇고, 때론 학자의 통찰력으로 주관적 확신을 객관적 앎의 영역으로 끌어 올리고, 오늘의 앎이 내일의 기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한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 그래서 인터에브리띵이 되기를... 삘받아서 쓴 개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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